2002년 유럽 여행기(7:끝)
우리내외 유럽여행 기록
2002년 10월 19일 (토요일)
식당에 내려가니 오늘은 한쪽코너 테이블 위에 빵 두개 씩이 가지런히 노여 있는접시들이 모여 있다. 직각적으로 일본인 단체인줄 알았다. 기모노 정장을 한 아주머니부터 젊은 커풀까지 다양한 일인들이 하나 둘 내려와 조용히 식사를 하는데, 획일성이 징그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중공인들의 후안무치보다는 한결 나아 보인다.
아침먹고 짐끌고 역으로 걸어가다가 마침 택시가 지나가길레 불러타고(양여사께서는 벤쯔 타 보았다 하시네) 7시 10분에 역에와서 4.8유로에 6유로 주니까 이녀석도 땡큐 “써” 했지. 돈만주면 “써”야. 역시설 관찰하고 8시정각에 통근열차타고 만하임 중앙역으로 가서(15분소요) 8시 35분에 브리그행 Euro City 101열차편으로 만하임을 출발했는데
좌석 60개인 1등칸에 우리와 독일인 달랑 2명 뿐 인 데다가 마지막 3열은 유리칸막이가 있는 흡연칸이니 이게 내 전용열차가 아니고 무엇이냐?
거기다 오늘은 우리가 결혼한지 28돌 된 날 아닌가. 임금된 기분이라. 경치를 즐기며 느긋하게 여행하는데 국경역인 후라이부르그에서 경찰 두년놈이 다가와서 여권을 보잔다 기분이 상하는데 조용히 생각하니 이것도 소위 국제열차라 내가 깜박했구나.
그런데 두명의 경찰중에 남자녀석이 농담좀 할줄 아는기라. 일본말 같은 걸로 인사 하길레, “코리안”했더니 요놈이“평양?” 그래서 순진하게 “서울” 하고 나니 약이 오르는 거라 요놈의 자슥 어른 갖고 놀았네.
바젤을 지나니 완연 스위스라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스위스 주말농장에 지은 움막들이 독일것 보다 훨씬 크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두 나라 모두 크기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규제가 엄격한 것으로 보였다.
흰눈을 머리에 쓴 산들이 나타나고 급경사의 산록에 초지가 나타나고 가축 우리같이 생긴 스위스식 농촌 건물들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베른을 지나고 툰(Thun)을 지나 경치좋은 호수가를 가고 있을 때 문득 배가 타고 싶어졌다. 오늘의 목적지인 인터락켄 에 일찍간들 조그만 마을에서 할 일도 없을 것이므로 다음정거장인 슈피에쯔(Spiez)에서 무작정 하차하고 보니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고 군인 한명이 기차를 기다리며 앉아 있으므로 선착장을 물으니 독일어 같은 말로 저도 모른다는 시늉을 해서
표지따라 관광안내소로 가보니 토요일이라 꽉 닫혀 있는데 저 아래로 호수가 펼쳐저 있으니 무조건 내려가기로 했다. 오솔길을 찾아 20분쯤 꼬불꼬불 내려가니 호수가에 음식점도 있으며 Schiffstaion이라고 써 있는 아담한 선착장이 나타났다.
매표소 할머니에게 유레일 패스를 내보이며 인터라켄까지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이 있으면 공짜이며 인터락켄 가는 것은 2시 15분에 있으니 그냥 타면 된다고 웃으며 일러준다. 다같이 독일어를 쓰는데 이 백성은 어떻게 이다지도 상냥하게 행동할 까?
오랫만에 햇빛은 따스하게 비추고 사람들의 눈길은 부드럽고 호수의 물은 거울같이 맑고 눈덥힌 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기분이 정말 푸근하다. 이러한 것이 진정한 휴식이 아닐까?
2시 15분이 되니 마틴 이글로 라이너 호가 들어온다 이 배는 빠르게 운항하지 않고 이마을 저마을을 돌며 한두명씩 타고 내리며 운항하는 것을 보니 산간마을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것을 알았다.
뱃전에 서서 경치를 감상하다 보니 1시간 20분이 후딱 지나고 어느덧 인터라켄 웨스트 기차역 바로 뒤편 선착장에 도착해서 예약했던 샬레 오버란드(Chalet Oberland)호텔을 찾아가니 오버북킹 되었다며 같은 베스트 웨스턴 체인 호텔인 베르너호프(Bernerhof)호텔로 택시를 태워주겠단다.
도둑년들, 가까우므로 걸어서갔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바보라. 택시 타고 뱅뱅 돌아서 “값”을 물려야 하는 건데.
호텔에 여장을 풀고 동역까지 산보하고 오다가 눈더덮힌 고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먼 산은 안나오고 가까운 배경만 나왔다.
물을 사려고 하였으나 토요일 이므로 모든 가게가 모두 문을 닫은지라 겨우 키오스크에 가서 3유로 씩인가 주고 두병사서 방에놓고
호텔 식당으로 내려가서 결혼기념일 답게 저녁을 먹겠다고 영어로된 메뉴를 달래서 와인도 시키고 소위 뽕듀도 시키고 스위스식 포크요리라고 씌어 있길레 그것도 시켰더니 모두 아니올시다 였다.(65프랑).
특히 스위스식 돼지고기요리라는 것은 아침마다 먹는 햄 슬라이스 이었으므로
도기백 달래서 싸가지고 와서 쓰래기통에 버렸다. 결혼기념일 파티 치고는 정말 썰렁 했다.
인터라켄 두번째 왔지만 다시 가나 봐라.
2002년 10월 20일 (일요일)
이놈의 호텔이 가족이 경영하는 작은 호텔이라 아침도 7시 반이 되어서야 주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급히 먹고 짐 맏기고 뛰다시피 동역으로 가서 30% 할인권 내고 115프랑 짜리 표 2장 사서 8시 35분 기차를 겨우 탔다.
보통 열차와같이 바퀴와 레일의 마찰력으로 가는 이열차는 오스트역(해발567미터)에서 출발하지만 도중역에서 둘로 분리되어 앞부분은 라우터부라운넨(해발796미터)으로 먼저 떠나고 뒷부분은 조금 있다가 그린델발트(해발1,034미터)로 가는데
거기서부터는 바퀴 사이 중간에 톺니바퀴가 달린 등산열차로 갈아타고 클라이네 샤이덱(해발2061미터)에서 다시 만나지만. 기차는 또 갈아타야되며. 갈아타고 아이거글랫쳐(2,320미터)까지는 지상으로 가지만 거기서부터는 터널로가서 융후라후요흐(해발3,454미터 : 10시55분도착)에 오르는데
오늘은 재수가 좋아(날씨) 그란델발트에서 융후라우, 묀쉬, 아이거의 3개봉을 모두 볼 수 있었지만 융프라후 요크에 오르자 바람이 하도 세서 소위 프래토라고 부르는 야외에는 한 발짝도 못나갔고 사진도 제대로 된것이 없다.
내려오다가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 “유섭아”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중학생 때 부터 친구인 선우가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KBS 기자들과 함께온 그 일행은 그린덴발트로 가고 우리는 라우터부라운넨으로 와야했기 때문에 금방 헤어졌다. 물론 오스트역에서 찾으면 되겠지만 우리는 룻쩨른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찾지 않았다.(내려올 때 12시정각에 요흐 출발하여 2시 25분에 오스트도착)
기차 갈아탈 때 유의사항 : 단채객은 전용칸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문제 없으나 개별 여행객은 안내방송을 잘듯고 A B C 별“Section"을 잘찾아야 됨
호텔로 돌아와 짐찾아 웨스트역에 가서 햄버거로 점심떼우고 3시 16분차로 오스트역으로 이동하여 3시 30분 인터라켄과 룻쩨른간을 왕복운행하는 SBB Bruing 셔틀 열차를 타고 가는데 브리엔즈 까지는 호수를 끼고 가므로 경관도 뛰어나고 열차속도도 정상이었으나
브리엔즈를 지나 어느역에서 10여분간 정차 했을때, 역무원의 행동으로 보아 궤간을 협궤로 바꾸는 것 같았으므로 출발후 열차의 제일 뒤로 가서 보니 레일은 협궤가 되었고 중앙에 톱니레일이 하나 더 있는게 아닌가. 즉 열차 전체가 등산열차로 바뀐 것이다. 다시 말하면 특수기관차가 붙어 열차를 끌고 천천히 산을 넘는 것이 아닌가? 산을 넘고 정상속도를 회복하는데 1시간 정도가 소요 되었다.
그리 멀지않은 룻쩨른 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중 자연경관이 제일 뛰어난 곳이 인터라켄과 루쩨른 간이었다. 룻쩨른에 도착하여 여행안내소에 가서 모노폴(Monopol) 호텔의 위치를 알아보니 바로 길 건너편 이었다.
호텔에 투숙하려고 국적을 한국이라고 쓰자 접수일을 하는 동양계인 예쁜 아가씨가 변이라는 성이 전형적인 한국성 이냐고 묻길레 전형적인 성이지만 흔한 성은 아니라고 하고 흔한 성은 김씨, 이씨와 박씨라고 하자 자기가 한국에서 스위스에 입양되었는데 한국성이 김씨였다고 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제일 높은 층이면서 호수가 보이는 정면 방을 주어 기분이 좋았다.
밖에나가 물 사러 돌아다녔으나 일요일 이라 모두 닫았기 때문에 1키로쯤 가서 겨우 사왔다.
2002년 10월 21일 (월요일)
룻쩨른 이라는 도시가 인구라야 6만명에 주변 인구까지 합쳐서 16만 9천명 이라니 서울의 기준으로 본다면 웬만한 동 하나 보다도 작은 도시지만 아름다운 호수너머로 눈덮힌 알프스 연봉이 저 멀리 보이는 경치만 은 뛰어난 곳이다. 도시가 하도 작아 관광안내서 마다 제일 명소로 치는 것이 The Chaple Bridge with Water Tower 이었는데 호수를 가로 지르는 지붕 덮힌 나무다리 중간쯤의 옆에 물속에 서있는 8각 전탑을 워터 타우워 라고 부르며 소위 물탑(Water Tower)은 스위스를 상징하는 사진중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 이라고 자랑이 대단 했지만 내 눈에는 별거 아니었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거의 모든 길과 다리 라는 다리는 다 걸으며
어린아이들 같이 빙하 가든 이라는 초등학생 교육용 엉터리 박물관(1인당 9프랑)에 가서 사진 찍은 뒤
거울의 방까지 들어가 장난치곤 했다. 물론 튀틀리스 산 까지 하루 여행도 할 수 있지만 다시 인터라켄 방향으로 가야할 뿐 아니라 어제 융후라우에 올랐는데 또 산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비 맞으며 하루종일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특히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성돌이(踏城)도 했는데 그놈의 고소공포증 때문에 이 여인이 이때다 하고 의기 양양하게 내손을 잡아 주었다.
역광장 지하에서 소시지도 사고, 점심은 무얼 먹었지? 옆에 있던 카피테리아에서 밥위에 뭐 얹은 것과 야채 먹었고...
그리고 맥주 한잔 놓고 멍하게 앉아 있는 영감들도 보고. 소주도 오늘까지 꼭 맞춰 마셨고 아주 편안한 날 이었다.
매일이 오늘 만 같아라. 아냐 너무 그러게 살면 빨리 가... 조심해...
2002년 10월 22일 (화요일)
이제 서울로 떠나는 날이다. 8시 35분에 출발하는 열차타고 9시 30분 쮜리히역에 내리니 이놈의 역이 하도 커서 우리가 내린 홈에서 안내소 등이 있는 본역 건물
까지 500미터가 넘는다.안내소에서 지도 얻고, 짐보관소에 짐 맡기고, 가벼운 기분으로 쮜리히 관광에 나섰다.
우선 쮜리히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 보기로 하고 안내서에 쇼핑거리(The Shopping Experience)라고 소개된 중앙역거리(Bahnhof Strasse)를 구경하며
“바쁜선창가” 라고 소개된 곳에 가서 보니 각종 꽃과 조그만 과일들과(탁구공 보다 조금 큰 사과 등) 농가에서 만든 양념 병 등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 서울 기준으로 보면 무척 한가한 편에 속하지만 유럽의 기준으로 그랬다는 겄이다.
전차길을 건너 선착장에 갔으나 시간상 적당한 배편 이 없어서 안내서에 있는
대로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어. 마크 샤갈 작품인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교회, 쥬리히에서 제일 유명한 랜드마크(교회),
유럽에서 제일 직경이 큰 시계가 있는 종탑, 세계에 잘 알려진 오페라 하우스 등 하는 식으로 소개된 곳을 모두 돌아다니며 느낀 점은 이곳 구 시가지의 골목길
폭이 이제 까지 보아온 유럽의 타도시들 골목 보다 더욱 좁다는 것이었다.
답사를 마치고 역으로 돌아오니 12시밖에 안되었으므로 이곳 사람들이 점심을 마칠 때가지 역사옆의 스위스국립박물관이 있는 공원의 강가 벤취에서 쉬다가 1시경 역사 지하에 있는 거대한 쇼핑몰의 서서 먹는 식당가에서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었는데(30프랑), 양은 많았고 맛은 그저 그랬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주민 생활권의 중심 축이 역이긴 하지만 스위스(내가본 룻쩨른 과 쥬리히)는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 느낌이었다. 두도시 모두 도시규모에 비하여 역건물의 규모가 매우 크고 열차의 운행 방향과 열차횟수가 엄청나게 많으며 버스나 트램 등 타 대중교통수단의 시종착점이 모두 역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으며 역건물 밑의 지하상가 규모도 놀라울 정도로 컸다.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해도 시간이 남아서 무조건 아무기차나 타고 30분쯤 가서 시골도시 둘러보고 돌아와서 짐 찾아 기차 타고 비행장역에 내려 체크인 하고
(쥬리히 공항에서 체크인은 swissport 라는 회사가 대행 해 준다,즉 대한항공 등 운항횟수가 적은 항공사들은 카운터 한곳에 안내직원 한명씩 만 배치하고 실제 짐 맞기고 보딩패스 받고 체크인 하는 업무는 swissport 라고 씌어진 카운터에서 공동으로 하는데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로 보았다.)
보세구역에 들어와서 승례는 아이스크림 먹고 나는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맥주 마시고 남은 프랑화 털어 치즈 사고(빠리 드골 공항과 달리 이곳에는 치즈 파는 곳이 한곳 밖에 없다)
오후8시 15분에 비행기에 올라 정각9시에 이륙하여 와인 5잔 보드카1잔 위스키 2잔 마시고 억지로 자고 나니까
9시간 55분만인 2002년 5월 23일 오후 1시55분에 인천공항에 착륙하였다.
짐찾아 밖으로 나오니 우리 아들 성철이가 웃으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