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띠아고

2,000리 걷고 와서(12)

변유섭 2007. 12. 26. 15:34

 

2007년 9월 2일(32키로 걸은날)

 

오늘도 6시 정각에 떠났는데 어두운 골목에서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아가씨가 다가와 독일 말을 하는데 길을 묻는것 같아 가르쳐 주었더니 쏜살 같은 걸음으로 앞서 간다.

 

내가 어두운 새벽길을 잘 찾아 가는 것은 어느 마을에 가던지 다음날 갈 길을 미리 마을 밖까지 답사 해 두기 때문이다.

 

7시 조금지나 11개의 아취가 있는 예쁜다리를 건너자 부루고스와 빨렌씨아의 경계표시가 나타났다. 빨렌씨아지방(Provicia de Palencia)에 들어선 것이다.

 

길고 긴 까스띨라 수로를 따라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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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정교한 수문으로 연결된다, 로마시대 에도 이지역이 "로마제국의 빵바구니"로 불리 었다는 배경을 알겠다. 조금만 관심있게 관찰하면 농업용수로가 거미줄처럼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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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30분경 이 곡창지대의 중심마을인 후로미스따(Fromista : 라틴어로 "곡물" 인 "frumentum"에서 유래 했을것 이라는 설도 있단다)에 도착하여 바르에서 빵한쪽, 감자 오므렛, 밀크커피로 아침먹었다.

 

까미노가 이곳부터 20키로 가까이 계속 자동차 길과 나란히 감으로 약간 지루하던 터에 쉬어 갈 겸 어느 마을의 야외 바르에서 커피 한잔 하는데, 젊고 잘생긴 스페인 부부가 어디서 왔느냐며 말을 건다.

 

3주일 동안 레옹 (Leon)까지만 걸을 예정으로  한국에서 왔는데 지금 속도로 가면 뽄훼라다(Ponferrada) 까지 갈 것 같다고 하자, 

 

내 "rr" 발음이 이상 했던지 예쁘게 생긴 부인이 부르릉 부르릉 오토바이 타는 동작을 하며 "뽄훼를-라다"라고 가르쳐준다. 참 명랑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야.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은아들, 딸 하나씩 두었으며,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자동차 여행 중이란다. 축하해 주니까, 같이 사진좀 찍자고 해서 어깨동무 하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왕 사진찍는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 부연 설명 하겠다. 통계상으로는 작년에 138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다지만 유색인종은 0.3%밖에 안된다.

 

따라서 동양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같이 사진 찍기를 요청하는 사람들 과는 즐겁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 특히 여자들끼리 온 사람들은, 같이 찍자고 말은 못하고 내 부근에서 자기들 끼리 찍는척 하며 나도 앵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내 글을 처음 부터 읽어주신 분들은 벼란간, 레온, 뽄훼라다 얘기가 나와 궁금 하실 것 이므로. 내 여행 일정에 대해 말씀 드려야 할 것 같다.>>

 

((글 머리에 쓴 대로, 내가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6월 하순이었다. 당장 하고 싶었으나, 스페인 휴가철인 7-8월은 너무 혼잡하니까 피하라는 안내글도 많았고, 우리 부부가 함께 10월초에 빠리를 가야 할 일이생겨서, 10월에 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8월 중순이 되자 날씨는 덥고, 몸이 군실 거려서, 추석이 되기전에 혼자 3주간 레온이나 아스또르가 까지만 걷고 일단 돌아와서 추석을 쇤후 (추석 등 명절은 반드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야 옳다는 것이 내 가치관이다) 10월에 다시 가서 남어지 2주를 걷기로 결심하고,

 

벼락치기로 준비해서 8월 20일에 집을 나섰는데, 다른 분들이 글로 쓰신것 보다, 내 걸음이 의외로  빨라져서 산띠아고 까지 가도 추석 전에 귀국이 가능

할 정도로 되었으나,

 

"나 혼자만 면죄부를 받으면 심심할것 같아서?", 꼼뽀스텔라 발급 최소여건(100 키로 이상 순례)을 충족시킬수 있는 사리아(112키로 남긴 지점)까지만 걷고 귀국 했다가,

 

10월 초에 부부가 함께 가서 사리아부터 나머지 구간을 걸었다.))  
 

오후 1시 35분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on de los Condes)의 싼타마리아 성당 뒤에있는 알베르게 에 도착하니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영어를 잘하는 오스삐딸레라(Ms. Patricia )가 더운데 멀리 오느라 고생 했다며 레모네이드를 딸아 주는 등 정말 친절하게 시설 안내하며 침대까지 데려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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뽄훼라다 에서 빠리가는 방법을 물어 보았더니 자기는 자세히 알지 못함으로 오후5시 자기와 교대할 오스삐딸레로가 오면 업무 인계한 뒤에 관광 안내소에 같이가서 알아 보잔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관광객이 유난히 많은 이 마을을 둘러 보고 돌아오니 내 침대와 붙어 있는 침대에 트리시아 아줌마가 떡 자리 잡고 계신것 아닌가? 아이고... 삼순 아줌마-아 여기까지 쫓아와요?

( Tricia : 영어를 가만히들여다 보니 바로 삼순이라.)

 

이곳 인터넷에 다움이 뜨므로 집 떠난 후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영어로 나마 소식을 전할수 있었다.

 

5시 교대할 오스삐딸레로(Mr. Felix Cozdova) 가 오자 서로 상의 하더니 기차역에 전화를 걸어 기차로 가는 방법을 조사 하고 나서, 나를 이끌고 관광 안내소에 가더니 버스로 가는 방법을 세밀하게 알아보고 모두 영어로 적어준다.


복받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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