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띠아고

2,000리 다녀 와서(2)

변유섭 2007. 12. 30. 14:10

2007년 8월 22일 (26키로 걸은날)

 

시차때문에 새벽 4시에 눈을 떴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으므로 밖에 나가 산책하며 이 성의 남쪽문 사진찍고, 5시 30분경에 돌아오니

 

주방에서 해드렌턴 키고 커피를 마시던 샤스티엔 이라는 독일청년이 자기는 불란서의 어느 지점에서 부터 일주일째 걷고 있다며 커피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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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오스삐딸레로가 옆방에서 나와 전등을 켜고 식탁위에 커피, 우유, 바게뜨와 쨈을 준비해 주고
막사발 같은 대접으로 커피에 우유를 섞어 퍼주며 마시란다. 친절이 몸에 밴 분이다.

 

바게뜨 몇 쪽과 우유커피 두 대접 마시고  6시 45분 알베르게를 떠나 2천리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해가 뜨기 시작하는 하늘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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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쯤 걸어 사설 알베르게가 있는 오리쓴(Orisson)을 지나자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여러 나라의 순례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시간쯤 더 올라 표고가 일천미터를 넘어 구름속으로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판쵸를 뒤집어 쓰고 비구름 속을 오르는데 맑은 날이면 달력사진 같이 아름답다던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는 고사하고

 

발목까지 빠지는, 가축 분뇨가 뒤섞인, 흙탕길을 피해 돌아 가랴, 쵸코바 씹으랴, 빗물 젖은 바게뜨 목구녕으로 넘기랴,

 

자동차타고 이곳까지 올라와 십자가 앞에서 사진찍는 관광객들 관광하랴, 지나치는 순례자들과 웃으며 인사하랴,

 

언제 국경을 넘었는지 알지도 못한채 한번도 쉬지 못하고 6시간 50분간을 계속 걸어

 

오후 1시 35분 론쎄스바알레스(Roncesvalles)에 도착하니 큰 비는 그치고 안개같은 부슬비만 가끔 내린다.

 

이곳은 역사가 있는 거대한 수도원 때문에 관광객이 옴으로 아래 사진과 같은 식당 2곳과 호텔등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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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알베르게는 옛수도원을 개조한 것으로 100명 이상 (자료에 따라 130명 이라고 쓴곳도 있음)이 한 방에서 잔다.

 

버스타고 온 관광객들이 문앞에서 기웃거리며 순례자들의 잠자리를 구경하는곳 이지만

 

지하에 남녀 구분 변소와 샤워실, 코인세탁기, 코인인터넷 등도 깨끗하게 유지하는 곳이다(1일 5유로)

 

물론 수용인원에 비해 시설이 모자라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은 순례자로서 감수할 만 하다고 느꼈다.

 

특히 여러명의 오스삐딸레로(라)들이 매우 친절해서 좋았다. 부근에 호텔도 있으므로 세탁서비스를 받을수 있을 것 같아서 빨래한 옷을 들고 영어가 통하는 오스삐딸레라에게 물으니

 

이곳은 작은 마을이라 그런 서비스는 없다며 젖은 빨래를 받아 지하실의 여자 샤워실로 가지고 가더니 탈수기로 탈수해서 돌려 주었다.

 

이곳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는 이스�(Iztok)이라는  유난히 파란 눈동자를 가진 슬로베니아 사람이 어제 쌍쟝 오는 기차에서 나를 봤다며 말을 건낸다.

 

서양인 치고는 상식이 풍부한 청년이다. 남한과 북한의 차이점 까지도 알고있다.

 

이곳 성당의 8시 미사는 순례자를 위한 것으로,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모든 참례자의 국적을 불러주고,

 

미사 끝부분에 순례자들을 제단 앞으로 불러모아 특별히 축복해 주는 의식이 인상적 이었다.

 

미사후, 식당에서(예약해야함) 순례자 메뉴(Menu del Peregrino : Pilgrim's Menu)라는 것을 먹었는

 

가격에 비해(8유로) 양이 많았고, 음식의 질 보다는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10여명씩 합석하여 먹는분위기가 더 좋았다.

 

피로에 지친 100여명이 한방에서 자므로 코골이가 장난이 아니겠지만 나는 새벽까지 잘 잤다.


 

2007년 8월 23일(27키로 걸은날)

 

6시에 일어나니 아직도 비가온다.

 

6시 45분 빗속에 판쵸 걸치고 출발하여 전지 켜들고 물구덩이 피해가며 숲길을 가는데 저 앞에서 여자 두명이 서 있다가 내 전지 불빛을 보고 따라온다.

 

영국에서 1주일 휴가를 얻어 이곳에 왔다는 아가씨들 인데, 전지도 없이 비 내리는 새벽길을 나선 용감한 사람들 이지만 짐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날이 밝자 한명이 발이 아파 쉬어 가겠다며 나보고 먼저 가란다.

 

두시간쯤 지나 조그만 수퍼를 만나 크로아쌍과 오렌지 쥬스로 배 채우고 12시 15분쯤 아름다운 마을 주비리(Zubiri)를 지나며, 강이 흘러 내리는 쪽으로 나도 갈 것이므로 내리막 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오른쪽 강 건너 저 아래로  단양의 시멘트공장 같이 흉칙스런 마그네싸이트 공장이 보이고 폐광석 더미 위로 계속되는 오르막 길이 아닌가? 지루한 언덕을 넘어

 

오후 1시 40분경 랄라쏘아냐 (Larrasoana)의 공립 (Municipal)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하루종일 비가 왔음으로 카메라를 꺼내지 못해 사진도 이것 한장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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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 배낭 놔두고 마을을 돌아보니 가게도 없고 바르(Bar)도 한곳밖에 없는 한적한 산골마을이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그런지 바르에서 파는 음식도 없어서 맥주 한잔 마시고 나와 알베르게 사무실에 가서 6유로 내고 침대 배정받고,

 

젖은 구두에 알베르게에서 제공한 신문지를 채워 놓고, 스포츠 쎈달로 갈아 신으니 상쾌하다.

 

다행히 순례자 사무실에서 비스켓 한종류와 와인을 판매함으로 사 갖고 나와 처마 밑에서 먹고 있는데 처량해 보였던지 앳되 보이는 유럽인 청년이 땅콩봉지와 천도복숭아와 오렌지를 갖고와서 내게 내민다.


"No, thanks."했더니, 단호한 태도로"I insist !, I insist !"한다. 내 생애에 처음 들어본 말 이지만 그뜻은 알겠으므로 복숭아 하나 집어들고 대단히 고맙습니다 했다. 아아 이것이 이 까미노의 정 이구나.

 

이날저녁 이스�과 그의 애인 네이카(Nejka)와 네이카의 친구이면서 어제 내 옆 침대에서 자며 눈길도 피하던 귀엽게 생긴 세침때기 하이케( Heike)가 나를 맛있는 스파게띠 저녁에 초대했다.

 

가게도 없는데 재료를 어디서 구했냐니까, 처음부터 지고 왔단다. 이사람들은 보통 서구인들과 달리 한국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있는 내용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므로

 

사무실에 있는 와인이 동나도록 사다 마시고 즐겁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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