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0일(24키로밖에 못걷고 1차 걷기 끝낸 날)
오늘은 사진이 없으므로 순례도중에 죽은자를 위해 누군가가 세워준 십자가 사진들을 올린다. 무수하게 많았지만 다 지나쳤는데, 폰쎄바돈 언덕 오르던 날은 내가 좋아하는 산길이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아서 카메라를 목에 걸고 가며 보이는 대로 찍었다.
어릴때 소풍가는 날이면 일찍 일어났던 것 처럼 오늘이 마지막 날 이라는 생각 때문에 4시 20분에 눈이 떠졌다. 꾸려 놓았던 배낭과 침낭 들고 복도로 나와 짐 정리하고 4시 50분 알베르게를 떠났다.
마을을 벗어나니, 음력 그믐 쯤 되었는지,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케냐의 암보쎄리 공원에서 시차 때문에 이른 새벽에 깨어 나와 바라 보던 별 보다 더 밝은 별만 반짝인다.
전지를 켰지만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옆의 개울에서 흐르는 물 소리 조차 무섭게 느끼며, 개들이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마을 몇개를 지나,
날도 새기 전에 사모스(Samos)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으려고 알베르게 앞에 있는 바르에 들어가니,
옆 자리에 어느 할아버지께서, 손자로 보이는 20세 전후의 배낭 맨 앳된 청년과 그의 여자 친구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에게, 아침을 사 먹이며 그들이 먹는 모습을 정겨운 눈초리로 바라 보고 계신 모습이 아름다웠다.
웅장 해서 멋 있다는 얘기와 크기만 하고 음침해서 싫다는 얘기를 함께 듣는 이곳 수도원의 벽화그려진 알베르게는 새벽이라 문이 닫혀 있으므로 둘러보지 못했다.
자동차길을 따라 마을을 나서니 머지않아 까미노는 다시 오른쪽의 산길로 접어 든다. 이제는 날도 밝았고, 갈리씨아 지방의 특색인 숲길 이어서 공기도 상쾌하고, 정겨운 시골길이 계속되어 걷기는 좋은데 두시간이 지나도 순례객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 본 알베르게 일람표에는 싸리아 까지 18키로 라고 했으므로 오늘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쯤 사리아가 멀리 보이기 시작해야 하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길을 잘 못 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계속 되는 까미노 표지가 있으므로 표지대로 따라가서 아구이아다(Aguiad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바르가 있어 들어가니 스페인 아가씨가 혼자 앉아 일기를 쓰고 있으므로 커피 한잔 하며 안내서를 빌려 지도를 살펴 보았다.
아하 뜨리아까스떼라에서 사리아 가는 까미노가 두개가 있구나.
내가 온길, 즉 남쪽의 사모스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오면 사리아까지 24.5키로이고, 북쪽 길, 즉 산실(San Xil)을 경유하여 이곳을 통해 가면 18.37키로 라고 써있다.
두갈래 길이 만나는 이곳 부터는 자동차 길을 따라 까미노가 함께간다. 그러나, 나는 사리아가 가까워 질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이 벙어리가 어디에 가서 어떻게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앗! 11시경 이 도시의 변두리에 들어 서자 마자 길가 오른쪽에 관광안내소가 보이는게 아닌가?얼씨구나 들어가서 만나 뵌, 자상하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천사다.
유창한 영어로, 유치원 아기에게 가르치듯, 지도 꺼내 놓고 버스 정류장 찾아가는법, 타야할 버스회사 이름, 찾아 가야할 매표소의 간판, 버스 시각표 등을 주고 기억해야 할 사항은 대문자로 또렸하게 적어 주며,중요한 것은 두번씩 강조하여 알려주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도 찍어 준다.
천당에 왔다. 우리나라 식으로 허리 굽혀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 드렸다.
버스 터미널(Estacion de Autobus)의 몬포르떼 버스회사(Empresa MONFORTE) 의 매표창구(통합 창구 없음)를 찾아 가서 루고 가는 13:00시 버스 표(2.95유로)사고 시간이 남았으므로
부루고스에서 못 바꾸고 남아 있던 미화 350불을 유로로 환전하려고 부근의 은행에 가서 15분을 줄서서 기다리다가 창구에 갔는데 40대의 창구직원이 상사로 보이는 자와 뭔가 의논 하더니 듣기도 싫은 스페인어로 지껄인다. 답답한데,
뒤에 줄 서있던 사람이 영어로 통역해 준다. 이곳 에서는 못 해주니까 루고에 있는 중앙은행에 가서 환전 하라는 얘기란다.
정말 알 수 없는나라야... 금융업중 환전 만큼 비용 안 들이고 이윤 많이 남기는 장사가 없는데, 은행에서 환전을 못 해 준다니...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보니 발을 절룩거리는 사람 ,발을 온통 붕대로 감싼 사람 등 고향으로 돌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대 여섯명이나 된다.
까미노 에서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걸었으므로 환자가(?)가 그렇게 많은줄 몰랐는데 버스 터미널에서 보니 도중 탈락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어느 분의 글이 생각난다.
까미노 걷는 사람은 누구라도 한곳 이상의 부위에 통증을 느끼며 걷는 다고...
그래, 나도 발바닥 통증이 멎은 뒤에도 계속 뒤우뚱 거리며 걸어 왔던 것 같고,
잘때도 오른쪽 모로 누우면 어깨가 아파 왼쪽으로 만 누운것 같다.
1시 버스타고 35분만에 루고에 도착해서, 이번에는 후레이레 버스회사(Empresa FREIRE) 매표창구를 찾아가 7.05유로 내고 산띠아고 공항가는 표를 사서 2시 30분발 산띠아고행 버스를 탔다.
시골의 중요한 대중교통수단 인 것으로 보이는 이 버스는 이마을 저마을 다 들리며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준다.
창밖을 보다가, 까미노 표지가 보이고, 땡�에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내가 냉방된 버스에 앉아서 간다는 것이 왠지 불안하다.
미묘하게 불편한 감정에 휩싸인체 1시간 50분 만에 산띠아고 공항에서 내렸다.
이 공항과 빠리 드골 공항간을 운행하는 유일한 저가항공 인 뷰엘링 카운터에 가서 알아보니까 오늘 편은 300유로가 넘고 2일 뒤의 것은 166유로라고 한다.
'오히려 잘 �다. 이틀간 쉬면서 산띠아고 관광 이나 하자' 라고 생각하고. 이틀 후의 비행기 표를 샀다,
다시 버스타고(1.75유로) 15분 만에 산띠아고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대성당 까지걸어 가니 20분 정도 걸렸다.
싼띠아고를 이틀간 둘러보고 빠리로 돌아와 볼일 본 뒤 9월 16일 귀국하여 혼자갔던 1차걷기를 끝냈다.
<< 짐 꾸리기 >>
((10키로라는 등짐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집에서 마시는 2리터 짜리 먹는물 5병을 배낭에 지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 내려 보는 것이다.
짐 꾸리기는 각자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내가 지고 떠난 등짐은 내 몸무게의 10%(5.8키로) 를 초과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5그램 까지 잴수있는 요리용 저울로 달아보고 제일 가벼운 것 만으로 준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일 품목으로는 제일 무거운 1,150그램의 카메라 때문에 등짐의 전체 무게가 6.0키로가 되었다. 또 현지에서 매일 마셔야 할 물, 간식 등이 추가 되었으므로 내 몸무게의 15%(9키로) 이상 지고 다닌 적도 많았을 것이다.
품목별로 살펴보자.
1. 배낭(1,050그램) : 내가 10년 정도 쓰던 밀레(Millet)제품으로 가볍다. 좀 작은듯 해서 새로 장만 하는 것을 고려해 봤으나 신제품은 자체 무게만 해도 대부분 2키로를 초과 하므로 포기했다.
2. 판쵸와 배낭 덮개(395그램) : 내가 쓰던것. 이 것 들도 신제품은 700그램을 초과한다.
3. 침낭(595그램) : 내가 쓰던 것은 2키로가 넘는 동계용 덕다운 이므로 제일 가벼운 하계용을 구입했다.
4. 스틱 (350그램) : 내가 쓰는 레키가 50그램 이상 가볍지만, 한번 잃어버린 경험이 있으므로 정든 것을 또 잃어버리면 서운할 것 같아 오천원 짜리 싸구려 스틱을 새로 구입했다.
5. 구두(1,110그램) : 신던 것, 5미리 작았다.
6. 스포츠쎈달과 신발 주머니(460그램) : 롯떼마트에서 내 발 치수에 꼭 맞는 것으로 새로 구입했다. 걷기 시작한 후 7일째 오후부터 등산화와 바꿔 신었는데 발이 시원해서 계속 이것만 신고 걸었다. 물론 발바닥이 굳은 뒤 부터 신었지만 나에게는 일등 공신이다.
7. 침낭깔개(120그램) : 야유회 가서 한번 쓰고 버리는 가벼운 은박지형 깔개를 세탁소에가서 폭 60쎈치 미터 정도로 개조해 가지고 갔으나 노숙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한번도 사용하지 못 했으므로 아내와 같이한 2차 걷기 때는 두고 갔다.
8. 전지(건전지 포함 120그램) : 스포츠쎈달 살때 함께 산 중국제 LED소형 전지로 가격도 싸고 조립 메뉴얼도 없어서 우습게 보았으나 길이 11.5쎈치미터, 최대직경 4쎈치미터의 소형이면서도
렌즈에 초점이 있어서 멀리 있는 까미노 표지 찾는데 최적이었다. 붙박이 고리에 운동화 끈을 끼어서 배낭 옆에 매 단 뒤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편리하게 이용하였다. 수명도 길어서 작은 AAA 건전지 네개로 20일간 견디고 산띠아고에서 꺼졌다.
내가 새벽에 걸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족히 30시간 이상 나를 밝혀준 것이다. 그 귀찮고 어설푼 헤드랜턴 보다는 이것을 적극 추천한다. 상표는 모르겠고 영어로 "Energizer"라고 만 써있다.
9. 스위스 아미 나이프(85그램) : 너무 크지 않은 기본형으로 유용하게 썼다.
10.종이류(610그램) : 표지 등 불필요한 부분 제거한 스페인어 첫걸음, 콜린즈 스페니쉬 후레이즈북, 메모수첩과 볼펜, A4용지2장에 양면 인쇄한 알베르게 일람표 및 "요점정리" 2쎄트중 1쎄트는 여권,항공권, 신용카드1매, 원화와 함께 비닐로 포장하여 배낭 내부 주머니에 보관하고 1쎄트는 조끼 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니며 수시로 보았다.
현금은 두터운 은박지로 된 지퍼식 녹차 봉지에 넣어 조끼 주머니에 휴대하고
다니며 썼다.
11.약품류 와 주머니(190그램) : 일제 정로환 15정(사용하지 않아 다행이다), 진통제 4정( 걷기 8일째 또산또스에서 1정 복용), 바이타민 씨 25정(거의 다 먹었다), 썬 불럭 크림(집사람이 강요해서 가지고 갔지만 짐만 되었다)
12.세면도구와 주머니(240그램) : 비닐 주머니에 넣은 샤워 세탁 공용 비누 1장, 반쯤사용한 소형 치약, 치솔,면도기, 손수건 싸이즈의 수건과 등산용 두건
13.카메라 (1,150그램) : 사진 매니아는 아니지만 갖고 갔다.충전기와 함께 제 케이스가 아닌 헝겁 주머니에 보관
14.휴대폰(95그램) : 인천공항에서 1번 사용후 짐만 되었다.
15.기본 의류: 제1쎄트(695그램)는 입고 자고 제2쎄트(730그램)는 세탁할 심산으로 2세트만 준비했다.
쎄트구성 : 내 등산바지는 대부분 무거우므로 1만원짜리 여름용 폴리에스텔 제품구입 1벌, 소위 기능성 폴리에스텔 긴팔 상의 입던 것 1벌, 사각팬츠(면내의) 1벌, 양말 2켤레, 평소 언제나 입었던 면 내의(상의)는 포기하였다.
16.방풍자켓 (540그램) : 고어텍스 입던것, 새벽 쌀쌀할 때도 입지 않았다. 추운듯 한 기온이 걷기에 더 좋았고 해가 뜨면 곧 더워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참았다.
다만 큰 도시인 산띠아고에 갔을때 주머니가 너무 불룩해서 우스꽝 스러운
조끼는 배낭에 넣고, 방풍 자켓을 입었다.
17.내의(135그램) : 등산갈때 입던 소위 기능성 내의로 밤에 추우면 면내의(상의) 대신 입을 수 도 있었고 낮에 더울때 반팔 티셔츠로 대용하기도 했다.
18.조끼(250그램) : 사냥이나 낚시를 간다면 몰라도 등산복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평소에는 입지 않았던 조끼를 입었더니,
불룩한 주머니들 때문에 꼬락서니야 어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크고 많은 주머니로 인하여 효용성이 아주 좋았다.
19.모자 (110그램) : 집에 있던 것, 평소 땀이 많고 갑갑해서 쓰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잘 썼다.
20.기타 : 옷핀 15개는 유용 하였으나, 실과 바늘은 물집이 안 생겨서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선물상자와 헌 운동화에서 끌러 놓았던 끈들은 전지,등산화, 간식 등을 배낭에 묶을때 잘 썼고 또 허리끈이 없는 내 구형 판초가 바람에 휘 날릴때 허리띠로 활용하였다.
코골이 소음 방지용 귀마게? : 코고는 소리가 안 들리게 한다고?
글 쓰는건 자유니까.
다음은 내 의문사항이다.
여자에게 필수적인 화장품 등의 용품, 빨래 집게, 손톱 깍기, 색안경 등을 가지고 가는 것은 각자의 취향 이므로 이상할 것 없다.
그러나 긴 바지와 긴 팔 상의가 오히려 우리의 약한 피부를 보호 한다고 생각 하는데, 그 뜨거운 태양 아래로 반바지와 반팔 옷을 "별도"로 가지고 가는 것은 의문이다.
백인종인 서양인의 체질은, 인체가 필요로 하는 바이타민 생성을 위해, 피부가 본능적으로 태양 광선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러나 평소 파라솔 쓰고 그늘만 찾던 황인종이 그 역겹고 무거운 자외선 차단제를 수시로 발라가며 짧은 옷을 입을 필요가 있을까?
짤막한 다리가 별로 멋지 지도 않은데. 서쪽으로, 서쪽으로 만 가는데...
아유 저 뒷 정강이 !!! 밀가루 칠한 것 같은 뒷 정강이 많이 보았다.))
<<1차 걷기를 마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 빨리 걸었는지 모르겠다.
대도시 에서는 하루정도 씩 묵으며 왔어도 되는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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