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9일(36키로 걸은날)
이제 바쁠 것이 없음으로 늦잠 자고 7시 15분에 출발하였다.
3키로쯤 떨어진 베가 데 발까르쎄(Vega de Valcarce)에 가니 아주 조그만 빵집이 문을 열었는데 많은 종류의 다채로운 빵을 팔고 있어서 신기했다. 이곳에서 밀크 커피와 크로아쌍으로 아침하고,
완만한 자동차길을 오르다가 에레리아스(Herrerias)마을이 건너다 보이는 이곳에서
왼편의 숲길로 내려서서
이 마을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니 경사가 제법 급해져서, 내가 걸은 전체 프랑스 까미노 중에서 처음 등산로 다운 구간을 30분 쯤 땀 흘리며 등산 했는데
경사가 그렇게 심한것은 아니고 청계산 매봉 오르기 보다도 쉬웠지만 그래도 조금은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더 오르자, 산비탈에 억지로 둥지틀고 들어 앉았으나 바르도 있고 알베르게도 있는 아화바 (A Faba) 마을이 나왔다.
마을 입구에 있는 샘 앞의 계단에 배낭을 벗어 놓고 물을 뜨려고 배낭을 열때 카메라가 굴러 떨어져서 고장이 났으므로 이후로 이틀간은 사진이 한장도 없다.
이곳부터 정상 부근 능선에 위치한 오 쎄브레이로 (O Cebreiro)까지 약 두시간 가까이 오르는 기분은 우리나라의 선자령 걷기와 거의 비슷한데, 멀리서 보니 오 쎄브레이로 부근이 온통 자동차와 사람들로 넘친다.
갈리씨아(Galicia)의 루고(Lugo)지방에 진입했다는 표지를 지나 능선의 아스팔트 길로 올라서자 남대문시장 보다도 더 사람이 많아서 방향을 잃고 아스팔트 길을 왼쪽으로 10분이상 가니까 마주 오시던 스페인 영감님 두분이 두팔을 벌리고 되돌아 가란다.
다시 인파 속으로 되돌아와 기념품 파는 상인에게 물어보니 알베르게를 가려면 저쪽으로가고 까미노를 가려면 자동차 길로 내려 가라는 시늉을 한다.
스페인에서 경찰이 교통정리 하는것을 본 것은 이곳이 처음이고 마지막 이었다.
이곳에 장이 선다는 글을 본 적이 없는데, 이날이 무슨 날 이기에 산 꼭대기에 그렇게 큰 장이 섰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러나 인파를 벗어나 루고 지방도(LU-634)를 걸어 내려오며 바라본 갈리시아는 동화속의 그림같이 아름다워서 자동차 길이지만 즐겁게 3키로 정도 내려오니,
오른쪽으로 빠지는 좁은 포장도로 쪽으로 가라는 표지와 함께 싸리아까지 40.5키로라는 표지가 보인다.
아아. 40.5 키로 라면 내일 이면 끝나는 구나 생각하며 신이나서 그늘진 숲길로 접어들어 콧노래 부르며 10여분 쯤 내려 갔는데,
찦차에 노부모를 모시고 올라오던 청년이 차를 세우고 뒤로 돌아 가라는 시늉을 한다. 아차 또 길을 노쳤구나... 위를 올려다 보니 너무 멀다...
두손을 합장하며 태워 달라는 동작을 하니까 차에서 내려 의자를 앞으로 제치고 뒷자리의 할아버지 옆으로 오르란다.
영어로도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말 로도 정말 고맙습니다. 했다.
노란 까미노 표지는 오른쪽의 좁은 도로로 꺾이자 마자 다시 왼쪽의 산길로 꺾여 있었으나 40.5라는 숫자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못 본 것이다.
오 쎄브레이로에서 뜨리아까스떼라(Triacastela)까지 21키로는 표고 1,400에서 부터 700미터까지 계속 내려 가는 지형으로 경치도 좋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내려오다가
오스삐딸 데 라 꼰데사(Hospital de la Condesa)의 바르에서 쌘드위치로 점심을 먹는데 저쪽 테이블 에서 한국인 아가씨가 점심시간 인데도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를 먹고있다.
이태리로 디자인 공부하러 가는길에 시간이 남아 29일째 걷고 있다는데 토실 토실한 이유를 알겠다.
5시 조금지나 뜨리아까스떼라의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자율지불제 이므로 헌금함에 5유로 넣었다.
이제는 사리아에서 버스타고 산띠아고 까지 가서 그곳에서 저가항공 타고 빠리로 가는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시간도 절약 되는것은 확실한데,
내일 사리아에서 산띠아고 공항까지, 이 장님이, 어떻게 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이태리 여자인 오스삐딸레라 에게 물으니 자기는 버스 사정은 모른다며 스페인 사람인 오스삐딸레로 에게 스페인어로 조언을 구해서 알아낸 사실은,
사리아에서 산띠아고로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일단 사리아가 속해있는 군( Province)의 군청소재지인 루고(Lugo)까지 가서 거기서 산띠아고 가는 버스로 갈아 타야 만 한다는 것과 버스가 하루에 몇 편 밖에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래. 일단 사리아에 가서 부딪쳐 보자.
말리려고 핀으로 배낭에 달고 다니던 양말이 없어졌으므로 한켜레 사려고 동네로 내려 갔으나 일요일 이라 문 연 집이 없어서 바르에서 관광객들 바라보며 맥주만 한잔 하고 올라 왔다.
<<양말 이야기>>
((모든 사람의 피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내 방법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 걷기에서,구두가 조금 작아 양쪽 새끼 발가락 윗부분 허물이 벗겨져서, 처음보는, 컴피드 라는 밴드 덕 좀 보긴 했어도, 내발에 물집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로 적는 것이다.
나는 등산 다니면서 양말의 효능을 남들 보다 더 믿는 편이다. 이번에도 속에는 여학생들이 운동할때 신는(작아야 접힐 위험이 적기 때문에 속에는 항상 꼭 맞는 것을 신는다) 목이 짧은 이중창 양말을 신고
그 위에 바닥 부분을 아주 두껍게 만든 양말을 또 신었다. 이번에 신었던 두터운 양말 두 켤레는 서로 다른 것 이었는데, 한 켤레는 산 잡지에 광고 께나 하는 외국회사 제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친구 부인에게 선물로 받은것 이었는데,
선물로 받은 것이 탄성도 우수했고, 걷기에도 "훨씬" 더 편했으므로 양말도 무시못할 변수라고 생각한다. 선물 받은 것은 잃어 버려서 상표는 모르지만, 3만원 이상 주고 샀다고 들었다.
오늘날은 인체공학이 많이 발달한 시대이므로 바닥이 딱딱한 등산화일 경우, "특수한 깔판"을 깔고 충분히 길들인다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어 제품을 추천하지는 못한다.))
저녁때 알베르게 앞에있는 바르에 가니까 아직 정식을 팔지 않으므로 쌘드위치를 먹고있는데, 3일전 부터 매일 만났으나 인사도 잘 안 하던, 이상하게 수염을 기른, 일본 청년이 오늘은 반갑게 인사 한다.
오늘은 4인실에 침대를 배정 받았으므로, 내일 아침 내가 먼저 부스럭 거리지 않으려고 스리핑빽 만 빼고 배낭을 미리 꾸려 놓고 잤다.
<<잠자리 이야기>>
((여행기에 보면 잠자리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어차피 여럿이 함께 자는 곳 인데 편안할 수가 없을 것 이라고 일찌감치 단념하고 왔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침실의 규모와 주위에서 자는 사람들에 따라, 편안한 잠자리와 불편한 잠자리가 구분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행이 2명이거나 4명이라면 2인실이나 4인실이 좋겠지만, 혼자 걷는 나에게는 대체적으로 4인실이 더 불안 했다.
침대에 오르기 전에 몇마디 얘기도 나누고 인사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날은 더 없이 좋았지만, 오늘같이 불안한 날이 더 많았다.
특히 오늘은 말 통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모두 무뚝뚝한데, 그중 한명은 환각제라도 먹었는지 행동도 이상했다. 또 내가 부시식 거려서 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신경이 쓰여 잠을 편히 잘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8명을 초과하는 큰 방에 자는 것이 더 편했다.
최소한 1명 이상은, 전등불 켜기 전에, 새벽에 일어나서 전지 켜 들고 부스럭 거릴 것이므로 그 소음 때문에 오히려 일찍 일어 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기침 할 것이고, 코도 골 것이며, 변소에도 갈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누가 했는지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으므로, 나도 신경 안 쓰고 편히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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