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띠아고

2,000리 걷고 와서(17)

변유섭 2007. 12. 26. 15:06

 

2007년 9월 7일(44키로 걸은날)

 

8명이 잘 수 있는 방에서 혼자 잤는데도 눈을 일찍 떴다.


따로 할 일도 없어서 5시 20분에 전지 켜들고 출발 했는데 표고 1000미터가 넘는 고지 이므로 제법 손이 시릴 정도로 춥고, 완만한 산길을 오르는데 어둠이 두려워서, 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걸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높이 1,500미터가 넘는 이라고 산(Monte Irago)을 넘기 전에 자고 가는 곳 이므로 알베르게가 세개나 있는(이중 하나는 영국 순례자협회가 자율납부제로 운영하며 시설도 좋다 한다),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하니 날이 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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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표고 1,150미터에 올라와 있지만  앞으로 350미터 정도 더 올라가서, 산길을 넘어야 하므로 이곳의 바르에서 밀크커피와 함께 크로아쌍을  2개나 먹고,

 

조금 어수선 하다는 느낌이 드는 폰쎄바돈 (Foncebadon)마을에 오르니 어제 저녁에 먼저 간 유에르겐이 쉬고있다.

 

폰쎄바돈 언덕 위에는 끄루스 데 훼로(Cruz de ferro:The iron cross)라는 돌무더기와 십자가가 있다.

 

이 돌 무더기는 우리의 조상들이 고갯마루에 서낭당을 만들던 것 처럼, 옛날 켈트족들도 산정이나 고갯마루에 산신령의 보호를 빌며 돌을 놓고 갔으며 그 풍습이 로마 시대에도 계속됐다 한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가 이와 같은 이교적 풍습을 순례자의 입맛에 맞게 변화 시키고자, 돌탑위에 십자가를 세우고,

 

자기가 지은 죄를 상징 하는 돌을 먼 고향에서 부터 힘겹게 지고 와서 이 십자가 밑에 버리고 참회의 기도를 드림으로서 죄없는 깨끗한 몸으로 산띠아고 성인을 참배 하러 가자는 식으로 상징성을 바꾸었으므로,

 

지금도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돌을 놓고 간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의미가 일부 변질되어 어떤 사람들은 바람을 적은 글을 놓고 가기 조차 한다. 어떤 서양인은 여행기에서 이곳을 피크닉 장소에 지나지 않다 고도 썼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곳까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으므로 아무것도 지니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이 가까워 질수록  "나는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인가?"를 골돌히 생각 하다가 나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콧등이 찐해졌다.

 

"그래, 모든 미움을 버리자, 미움의 근원인 욕심을 영원히 두고가자."

이곳에 서서 코발트색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시야가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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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뒤 돌아 보고 떠나니 꺼낸 물건은 하나도 없는데 신기하게 배낭이 가뿐해진 느낌이다.

 

독일인 유에르겐. 짧은 만남 이었지만, 대화 할 맛이 있는 친구 였는데... 이 사진 찍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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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햇살아래 가벼운 마음으로 고산지대의 능선 경치를 감상하며 가다가, 중세의 알베르게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편의 시설 등이 열악 하지만 오스삐딸레로의 독특한 개성 때문에 일부러 찾아 오는 순례자도 있다는 만하린(Manjarin)의 알베르게를 지나고,


몇 키로 더 가니,프랑스 까미노중 제일 높은 지점(표고 1517m)이라는 곳 부터, 급한 내리막 길이 계속되며 멀리 뽄훼라다가 보이기 시작 한다.

 

검은 지붕 색갈이 아름다운 엘 아쎄보 (El Acebo) 마을의 바르에서 캔 음료수 한잔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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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나세까(Molinaseca) 까지 8키로는 거의 뛰다 시피 내려갔다(내 경우는 경사가 급할때 사뿐 사뿐
뛰는 것이 다리에 부담이 적게 온다)

 

이 마을이 끝나고 자동차길을 따라 조금가니 길옆에 시원스런 알베르게가 있어 몸은 쉬고 싶어 했지만 마음은,"그까짓 7키로미터, 더 가자" 고 한다. 그래 더 가자.

 

하고 갔지만... 뽄훼라다의 성당 첨탑이 보인 후 1시간 정도는 정말 죽을것 같이 힘 들었다.
 
오후 4시 20분쯤 대형 주차장 옆에, 넓은 정원도 있을뿐 아니라 모두 185개의 벙커와 부엌 등을 갖춘
현대식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요금은 기록에 없는데 자율지불식 이어서 헌금 통에 5유로 넣은 것 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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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까미노 걸음중 제일 긴 44키로를 걸었으나 오랫만에 경치좋은 산길을 걸었고, 폰쎄바돈 에서의 다짐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인지 점심으로 천도 복숭아 한 개 만 먹었는데

 

저녁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수퍼에 가서 안주거리와 초록색을 띈 달콤한 30도짜리 오루호 (760cc,7.5유로)한병 사 갖고와서 조금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 도시가 자전거 순례 한도인 200키로를 조금 넘긴 곳에 위치 하고 있으므로 이곳 부터는 자전거 순례자가 부쩍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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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17일간 걸었는데 발바닥이 뜨겁던 처음 9일간은 하루평균 30키로씩 모두 270키로를 걸었으나

 

후반 8일간은 하루평균 38키로를 넘겨 전부 305키로를 걸었다. 특히 최근 5일간은 하루 평균 40키로 를 걸었다.

 

후반부에는 발바닥도 굳었고, 새벽 기온이 쌀쌀하여 걷기에 최적이었고 걸은 구간이 대부분 조금 지루 한듯 한 메세따 지역과  내가 좋아하는 산길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걷는것 외에는 할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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