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8일(37키로 걸은날)
내가 잔 방은 6시가 되었는데 사람들이 아직도 안 일어 난다.
가만히 보니 몇명은 벌써 떠났다. 6시 20분 내가 전기불을 켜고 급히 짐싸 6시 45분 출발하니 이제는 해가 점점 늦게떠서 7시 35분이 돼야 해가 뜨기 시작한다.
도중 네델란드사람(이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홀랜드사람 이라 한다) 일행과 걸었는데 30대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건다. 내 나이를 묻더니, 아버지가 63살에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까미노 못 하신게 섭섭하다며 눈물 짓는다.
자기도 남편이 35일간의 휴가를 얻을수 없어서 더 늦기전에 본인 만이라도 하려고 친구 부부와 왔다고 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것 같았다.
22키로이상 걸어 12:30 경 아소프라(Azofra)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는 새로지은 건물로 2인1실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고, 없는 것이 없으며 마을 광장에 있는 2개의 바르는 분위기 좋고 음식 맛 있기로 소문이 났다며
어느 외국인이 여행기에 이곳을 까미노의 뉴욕이라고 쓴 기록를 읽은적이 있고 마틴도 이곳에서 잔다 하므로 나도 이곳에서 쉬고 싶었으나
"내가 맛있는 음식과 좋은 잠자리 만을 찾으려고 까미노를 걷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서,
15키로 떨어진 다음 알베르게 까지 더 걷기로 마음 먹은 뒤,
발을 심하게 압박하는 등산화는 벗어서 배낭 위에 묶어 매고, 내 발에 물집이 생기지는 않았으므로 두꺼운 양말 두 켤레를 신은 다음 스포츠쎈달로 바꿔 신으니 걷기 전 부터 발이 시원하다.
1시 10분 아소프라를 떠나 20분 쯤 가다가 그래도 아쉬워서 뒤돌아 본 아소프라.
이곳과 다음 알베르게 사이에는 골프클럽 부근에 개발업자가 제법 크게 개발하고 있는 동내가 하나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아래사진과 같은 풍경이다.
3시경에 찍은사진, 그늘이 전혀 없다.
1시간 20분 후에 또 찍었으나 변한게 없다. 뜨거운 햇살과 더위로 고행 좀 했다.
5시 30분경 드디어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마을에 도착하여 마을입구에서 가까운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남은 벙커가 없다며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다른 알베르게 (Casa de la Confradia del Santo)를가르쳐 준다.
이곳은 한창 개조,증축 공사중이라 어수선 하지만 필요한 시설은 모두 있고 침대도 이층 벙커가 아닌 단층 침대며 요금은 자율지불제(donation)다.
그런데 내가 실수를 했다. 알베르게에서 자율지불제는 처음 이므로, 끄레덴씨알을 접수시키고 오스삐딸레라에게 도네이션은 어디에 하느냐고 물으니 문옆에 걸린 조그만 상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온 촌놈이라, 그녀가 보는 앞에서 돈 만원도 안 되는 5유로를 작은 구멍에 쑤셔 넣는게 쑥스러워서, 이따가 안 볼때 넣어야지, 생각하고
그녀를 따라가서 편의시설과 침대까지 안내 받고 빨래까지 한후 밖에 나가다가 사무실에 들어 가려니까 왠일인지 순례자 출입금지 팻말이 붙었다.
도네이션 이라는 것이 돈이 없으면 안 내도 되는 것 이지만, 내가 무능력자도 아닌데 못냈다. 그 후로는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조건 쑤셔 넣었다.
이도시는, 피의자를 잘못 판결했던 시장의 요리 접시에서 요리된 수탉 두마리가 살아 날아 갔다는 14세기의 전설 (배경과 내용에는 여러가지 버젼이 있다한다)에 따라
지금도 성당의 동쪽 탑속에 있는 우리에 암수 한쌍의 닭을 키우고 있으며 1년마다 알베르게 뒷편에서 키우는 닭과 교체하므로
이를 보기 위해서 유럽 전역에서 관광객이 몰려오기 때문에 오늘도 거리가 혼잡하고, 마을 크기에 비하여 식당과 가게가 많다.
스페인을 아이들의 천국이라 한다지만 내게도 이들의 가정교육 문화는 부러웠다.
바르에서도, 공원에서도, 동네의 조그만 체육시설 에서도, 거리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자상하게 대화하고 놀이 하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이곳 골목에서도 씨에스타가 끝나자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 스페인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느방향으로 셧터를 눌러도 항상 부모와 함께있는 5-6명의 어린이가 찍힌다.
모든 순례자들이 최소한 몇 푼 이라도 현금을 갖고 다니고, 대부분 인적이 없는 곳을 걸어야 하는 까미노가 다른 선진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끔찍스런 사건이 매일 발생 할 것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다.
스페인의 까미노가 이렇게 안전한 것은 어린이를 사랑과 보살핌으로 키우는 가정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정 반대로 의문이 꼬리를 무는 생활 행태도 많다.
왜? 모든 집의 창문은 왜 그렇게 작고 모두 햇� 차단 장치를 했으며 열린 창문이 하나도 없을까?
왜? 모든 집의 출입문은 그렇게 크고 육중하며 자물쇄를 채울가?
왜? 허허벌판의 네모난 땅에 높고 견고하고 값비싼 철책을 두르고 대저택의 출입문 같이 장식한 요란한 대문을 만들어 놓고 채소나 가꾸고 있을까?
왜? 도시의 은행 출입문은 대부분 손 으로는 열리지 않고 버튼과 마이크 같은 장치가 있을까?
왜? 송아지 만한 경비견을 키우는 집이 많을가?
이곳에는 제법 큰 수퍼가 있어서 들어가 구경하다가, 시간이 많으므로 주방에서 장난좀 해 볼 생각이 들어서,
30도 짜리 푸른색 나는 오루호 한병 사고 6개만 포장된 달걀 한 묶음과 양파,마늘, 초리소(chorizo : spicy sausage : 마늘 등으로 간을 한스페인 식 소시지)와 작은바게트 한개를 사 갖고 왔다.
계란 3개는 내일 먹으려고 삶고, 3개는 풀어서 양파 마늘 다져넣고 초리소 잘게 썰어 넣어 중탕을 하려 니까 기구가 없어서 약한 불에 익히니, 조금 눌었지만 맛있는 안주가 되었다 .
아까 마을 입구의 알베르게에서 케서린 할머니를 만나 반가웠는데, 방에 돌아오니 힐마도 보이고, 얄미운 트리시아 아줌마는 바로 옆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얼마나 반가운지...
그래! 여기 까지 오길 잘 했다.
<<donation 제도>>
((1. 사전상의 뜻
웹스터 사전 : 1: the action of making a gift esp. to a charity or public
institution.
2: a free contribution : GIFT
프라임영한사전 : 기부. 기증
2. 내 개인적인 해석
여행기에 '공짜'라고 쓰신 분들이 계셔서, 사전을 찾아보니 무료라는 뜻은 없었으므로 내 나름대로 '능력에 따라 내실수 있는 금액을 스스로 정하십시오'로
해석하고 '자율지불제' 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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